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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할 수 없는 네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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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02 1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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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진보네트워크센터 논평


[논평]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할 수 없는 네 가지 이유


2002년 대한민국의 잊을 수 없는 사건들에서 인터넷이 빠질 수는 없다. 우리는 '붉은 악마'로부터 시작하여 '촛불시위', 그리고 '노사모'에서, 터져 나오는 대중적 열망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 열망은 사이버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 정치에서 '실체를 가진' 힘을 발휘하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불과 한달 후, '민주당 살생부'니 '전자개표 조작설'과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썰'들의 근원지가 인터넷으로 알려지면서 급기야 정보통신부는 대한민국의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 실명제를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지난 3월 28일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여기서 실명제는 국민의 주민등록정보 등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본인과 대조하여 신분이 확인된 사람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미 절반의 정부 부처 홈페이지가 실명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보통신부는 이것을 전체 정부기관 홈페이지로 확대하고 법제화를 통해 포털 등 민간이 운영하는 인터넷 게시판에도 실명제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아니 결코 실현되어서는 안되는 정책이다. 국민에 대한 위헌적인 감시이자 개인정보 침해이고 검열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려면 다음의 네 가지 지적에 대해 답해야 한다.

첫째, 익명성은 합헌적으로 보장받는 권리이다. 우리 헌법은 통신의 비밀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법률에서 엄격하게 보장되는 국민의 권리이다. 그러나 전자 네트워크는 너무나 투명해서 별도의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모든 행위의 흔적이 네트워크에 고스란히 남기 때문에 국민의 익명의 권리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에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게시판에 이용자의 로그기록을 남기지 않고 수사기관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이용자의 익명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물론 수사상의 편의를 국민의 인권보다 먼저 생각하는 권력에 의해 익명의 권리는 계속 위협받아 왔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나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에서는 수사기관이 수사할 경우 영장 없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여 위헌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모든 행위와 통신에 명찰을 붙이고자 하는 인터넷 실명제는 지금까지의 어떤 정부 정책보다 위헌적이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책이 될 것이다.

둘째, 인터넷 실명제는 국민이 자기 행위에 대한 사후적으로 법적 책임을 지는 것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즉 모든 국민의 행동과 발언을 사전에 기록으로 남길 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인터넷 실명제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 없이 국민을 수색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영장주의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 실명제는 대한민국 국민을 언제든지 위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고 감시하는 위헌적 정책일 뿐 아니라 무죄추정의 원칙을 합의해온 인류의 인권적 발전 또한 후퇴시키는 처사이다.

셋째, 인터넷 실명제가 가능하려면 거대한 국민 데이타베이스가 하나 이상 구축되고 실명 확인을 위해 상시적으로 대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어떤 데이타베이스를 어떻게 구축하고 이용하겠다는 것인지가 문제가 되겠다. 최근 은행이나 각종 신용정보 회사들이 국민이 통장 개설이나 특정한 목적 하에 동의하여 넘겨준 개인정보를 데이타베이스화하여 유료로 실명 확인을 하는 데 사용하여 불법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만일 실명화라는 명목으로 국민이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할 것을 동의하고 넘겨준 개인 정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면 이것은 프라이버시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자 현행 법률에도 위배되는 처사일 것이다. 우리는 내친 김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식화할 것이며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하여 이같은 추세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넷째, 인터넷 실명제의 가장 큰 목적이 글쓰는 사람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할때 인터넷 실명제는 명백한 검열이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판례에서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에 '위축적 효과'를 낳는 정부의 행위를 검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기관 홈페이지들이 하나둘 어물쩍 실명제를 도입하더니 이제는 공식화하려고 한다. 안될 말이다. 민주주의의 원칙 하에 정부기관 홈페이지야말로 다른 어느 공간 보다 특히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명제는 구조적으로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표현을 막고 조직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
고발자를 위축시킬 것이다. 무조건 실명을 쓰라는 것은 말하는 것 이외에 다른 권력을 갖지 못한 이들을 억압하는 권력의 폭거이며 때로는 심각한 폭력이다. 정보통신부는 '고발 게시판'에 익명을 보장하겠다고 말하지만 인터넷의 게시판을 '고발'과 '비고발'로 줄세우겠다는 계획은 비현실적이다.

인터넷 게시판의 토론이 모두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게시판은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보통신부의 인터넷 실명제는 하나의 게시판이나 하나의 커뮤니티의 결정이 아니라, 국가가 강제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게시판에 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 정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 인터넷이 성숙한 토론 문화를 갖고 인권을 존중하게 되려면 인터넷 실명제가 아니라 다른 정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국민이 권력의 시선을 의식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지난 독재정권의 시대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무엇보다 정보통신부는 주무부처로서 인터넷에 대한 발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정보화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 하에 추진되어야 하며 정보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또한 이러한 원칙 하에 그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만일 인터넷 실명제가 정말로 도입된다면 노무현 정부는 자신을 당선시켰다고 지칭되는 인터넷의 힘만큼 커다란 국민적 저항을 만나게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