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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감시,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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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20 00: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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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감시, 무엇이 문제인가

장 여 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della@jinbo.net

1. 첨단기술, 편리, 그리고 감시

지난 8월 28일 (주)대용 노동조합은 노동 감시 중단과 CCTV 철거를 주장하며 파업에 돌입하였다. 작업장 감시 문제를 단일한 주제로 삼은 첫 파업이라 할 만하다. 작업장에 설치된 첨단 기술을 둘러싸고 사측과 노동조합의 입장이 팽팽히 엇갈리는 지점은 이 기계의 용도이다. 사측에서는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하고 노동조합에서는 노동자 감시를 위한 도구라 주장한다. 어떤 주장이 맞는 것일까? 그 답은 이런 엇갈림 자체가 작업장 감시 문제의 전형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지금 대부분의 서울시내버스에 CCTV가 달리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지난 96년 10월, 석달 전의 버스요금 인상이 실은 2백38억여 원의 운송 수입금을 빼돌려 회사를 적자 상태로 만든 업주들의 '조작극'에 의한 것이었음이 검찰에 적발되었다. 그런데도 다음해 3월 버스 요금이 다시 인상될 조짐을 보이자 버스 수익 투명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때 "버스 수익이 불투명한 것은 운전기사들의 삥땅 때문"이라는 업주의 주장이 부각되었고, 애초에는 버스업주들의 비리 때문에 시작된 '시내버스 개선종합대책'은 이렇게 해서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한 CCTV를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남겨놓고 마무리되었다. 서울시에서는 업주들에게 거액의 CCTV 설치비를 지원했고 서울시내버스에 일제히 CCTV가 달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 CCTV가 이제는 더 이상 버스 수익 투명화와는 관계가 없다. 몇년새 널리 보급된 교통 카드가 요금을 '투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입 명분을 다했음에도 CCTV는 여전히 건재하다. 사업주들이 버스 CCTV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는 전담 직원을 채용하고, 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CCTV를 백 배 활용한다. 어떤 버스 회사는 "물증을 잡았다"며 노동조합 활동가들만을 해고했고 또 다른 회사는 관례대로 커피값을 뽑아간 노동자에게 "200원 삥땅쳤다"는 이유를 들어 퇴사를 종용했다. 때때로 그들은 CCTV의 '공익적 목적'을 강조하기도 한다. 9시 뉴스에서는 버스 CCTV에 잡힌 소매치기 장면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시청자는 소매치기의 행위에 분노하면서 CCTV가 우리에게 주는 편리함에 안도한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작업장 감시 문제의 첫 번째 전형성은 감시 기술 도입 명분의 전형성이다. 도입 명분은 결코 "너를 감시하겠다"는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뉴사우스웨일즈 프라이버시 위원회는 1995년 9월 발표한 보고서 [보이지 않는 눈 : 작업장에서의 비디오 감시에 관한 보고서]에서 사용자측의 아홉가지 전형적인 '도입명분'을 제시하였다. ①절도 방지 ②적대적인 기물파손·방화·파괴 방지 ③(생산성 향상을 위한) 작업 모니터링 ④고객 서비스 향상 ⑤고용인 교육 ⑥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⑦법적 의무 준수 ⑧(법적 분쟁 발생시) 사용자 면책 ⑨(생산성 향상을 위한) 생산과정 모니터링이 그것이다. 노동자가 '존엄성'과 같은 추상적인 논리로 감시 기술에 대응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이와 같은 명분 때문이다. 뒤에서 논하겠지만, 결국 '감출 것이 없어도' 자기정보를 통제할 권리로서의 프라이버시권이 이 지점에서 주요하게 부상한다.

작업장 감시 문제의 두 번째 전형성은 감시 기술의 정치성이다. 즉 감시 기술은 일단 도입된 이후에는 도입명분과는 다르게 생산성이나 효율성의 측면보다 노동 과정 통제 기능을 주요하게 수행한다. 즉 사용자가 발휘하는 '정치성'이 기술에 투입되는 것이다. 데이빗 노블은 공작기계 발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작업장에 도입되는 기술이 정치적 논리를 구현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가 연구한 공장에서는 공작기계의 후보로 녹음재생 방식과 수치제어 방식이라는 두 가지 방식이 동시에 추천되었는데 사용자들이 수치제어기계를 선호했던 것은 합리적인 생산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 - 즉 "녹음재생 시스템에서는 급송, 속도, 작업량, 산출고에 대한 통제권이 기계공에게 주어져 있는 반면, 수치제어 시스템에서는 통제권이 경영진으로 이동"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작업장 감시의 문제에 접근할 때는 일차적으로 기술의 중립성과 권력 관계의 은폐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작업장 감시 문제의 전형성은 전통적인 계급 갈등의 문제이자 작업장 정치에 관한 문제에서 유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노동 과정과 작업장 감시

작업장 감시의 문제를 가장 오랫동안 다루어온 것은 노동 과정·노동통제 분야의 연구들이다. 노동력 자체가 주요한 생산력의 하나이지만 인간의 능력은 기계의 능력에 비해 매우 잠재적이며 제한적이다. 따라서 한정된 시간 안에 잠재적인 노동력에서 최대한의 생산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사용자측은 노동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감시와 통제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작업장은 보다 완벽한 통제를 위한 사용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어 왔다. 노동자들을 한 지붕 아래 모으고 노동 시간을 정착시키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통제가 비교적 인격적이며 육체적 '처벌'로 이루어져 왔다면, 19세기말과 20세기 - 즉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관료제적 통제가 오늘날 기업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되었다. 발전된 회계 기법과 위계적이며 정기적인 보고서, 그리고 '과학적 관리'를 특징으로 하는 관료제는 전문적 관리자층을 등장시켰고 노동 과정에 대하여 보다 전면적이며 직접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했다. Sewell과 Wilkinson은 자유롭게 맺어지는 노동계약이 자본주의적 전유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관료적 감시는 그 정당성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말처럼, 관료들(관리자, 계획자, 사무원등)은 자신의 행동(지휘, 감시, 규율)을 주어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수단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료제가 확장되면서 생산기구가 점점 거대하고 복잡해져감에 따라, 조직을 유지·관리하기 위한 비용이 증가할 뿐더러 통제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테일러주의적 생산 방식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감과 저항은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를 계속 불러일으켰고 축적의 위기에 봉착한 자본측을 당황시켰다.
테일러주의의 과잉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유기적' 조직과 스스로 '책임자율성'을 갖는 조직원에 의한 통제 방식이 등장했다. 번즈와 스톨커에 따르면 '유기적' 조직은 공식성이 낮고 수평적인 정보흐름이 많으며 위계상의 지위보다는 전문성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기계적' 관료제와 많이 대비된다. 혹자는 이것을 '유연적 전문화'라 부르며 포스트포디즘의 징후로서 제시한다. 그러나 통제의 본질적인 면에서 변화한 점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통제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노동자 개개인의 '자유 재량'을 늘인 듯이 보이는 '책임자율'적 통제 방식은 오히려 소위 '팀작업'등으로 '동료에 의한 감시'를 조장하면서 보다 엄격하게 생산력 할당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비해 시간·장소가 극도로 유연화된 조직 구조에서 성과급등의 심리적·이데올로기적 경쟁 기제를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과거에는 동료였던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킨다는 점에서 '책임자율'적 통제는 가장 비인간적이며 전면적인 통제라 할 만하다. 이 통제 방식의 또 다른 비인간적 면모는 그 기계적 특성에서 드러난다. 관리자와의 인격적 접촉을 최소화하는 대신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첨단기술에 의한 작업장 감시 논란이 불거지는 것이다.

3. 프라이버시권을 노동자의 권리로!

기계는 소리 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감시가 더욱 위험하다. 이점은 푸코가 '전자 판옵티콘'에 대한 유명한 통찰에서 보여준 바 있다. 판옵티콘이 현대 감시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은유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꽤 논란이 있지만, 감시 문제의 핵심은 권력의 불평등함이라는 점에서 푸코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판옵티콘은 감시 받는 대상에게는 불을 환하게 쪼여 투명하게 만들고 감시하는 자의 위치는 조명의 뒤편에 두어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점점 더 투명해 지는 개인,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권력'으로 요약되기도 하는 이런 감시의 모형도는 소위 정보화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며, 가장 큰 문제는 감시를 받고 있는 대상이 감시의 시선을 언제나 의식하면서 규율 권력을 내면화하게 되는 데 있다. 즉, 실제로 감시당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저기 달려져 있는, 혹은 숨겨져 있는 CCTV로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음을 언제나 의식하고 행동을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책임 자율성'의 요체이자 최근 많은 기업주가 감시 기술을 열렬하게 도입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업장 감시의 문제는 권력 관계의 문제라는 주장 자체가 도전을 받는다. 왜냐하면 종종 노동자에 대한 감시는 사용자와 노동자간에 맺어진 고용계약의 이행여부를 '합당하게' 모니터링하기 위한 사용자의 정당한 행위로 포장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프라이버시권은 노동권의 주요한 확장 지점으로 등장한다. 프라이버시권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며, 관련법과 제도는 거의 없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그러나 프라이버시권의 중요성은 이것이 결코 교환의 개념이나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라는 데 있다. 감출 것이 없으면 감시당하라는 전형적인 정당화를 프라이버시권으로 맞설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감출 것이 있어서 엽서가 아닌 편지봉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는 업무 시간에, 회사의 컴퓨터로, 회사의 책상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컴퓨터와 서랍을 열어보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무엇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사생활의 영역이며 프라이버시권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침범할 수 없다. 첨단기술에 의한 작업장 감시의 또 다른 어려운 문제는 첨단 기술은 '시스템'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시스템'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기술에서는 '감시 기술'을 따로 분리해 내기가 쉽지 않고, 사후에 감시 기술을 포착하더라도 이를 분리해 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후적인 대응의 한계는, 기계 자체의 철수보다는 애매한 '합의'로 결론이 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도입된 기술은 엉덩이를 무겁게 붙이고 앉아 웬만해서는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따라서 작업장 감시에 대한 대응은 사전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프라이버시권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프라이버시권은 '역감시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투명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경영진일수록 불투명한 태도로 특정 기술의 위험성에 대하여 은폐하곤 한다. '정보'를 둘러싼 이런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경영진이 노동 과정에서 틀림없는 우위를 점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따라서 핵심은 '투명'의 권력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감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사용자가 도입될 기술에 대한 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은 연후에 도입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즉 기술 통제권의 확보야말로 작업장 프라이버시권의 핵심이며,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 통제의 권리를 돌려주는 정당한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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